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스마르크급 전함 (문단 편집) == 건조 계획 == || [[파일:external/www.kbismarck.com/bism41fiord.gif|width=100%]] || [[파일:external/www.kbismarck.com/tirp44.gif|width=100%]] || || 1941년의 비스마르크급 전함 1번함 비스마르크 || 1944년의 비스마르크급 전함 2번함 티르피츠 || 비스마르크급 전함에 대해 논하기 전에, 비스마르크급 전함을 만들고 운용한 독일 해군의 의중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 해군은 전함을 가질 수도 없었고 기술 연구를 위한 목업도 없이 그저 설계도를 구상하는 정도에 그첬다. 이후 영국-독일 해군조약으로 독일의 오랜 꿈인 전함보유가 인정되면서 라이히스마리네는 [[북해]]와 폴란드 해군, 프랑스 해군을 상대하는데 적합한 35,000t급 조약형 전함 설계안을 내놓았다. 이 설계안은 해역 폭이 좁고 [[해안포]]가 많은 북해 특성상 최대한 신뢰성과 방호력에 집중한 형태였고, 13인치 2연장 주포탑 4기와 14인치 측면장갑, 30kn의 고속성이 주된 특징이었다. 특이하게도 이 설계안은 중량 증가를 우려하여 프랑스 해군과 같이 4연장 주포탑을 채택하는 방안 또한 고려되었다. 그리고 1935년부터 독일 해군의 사령관은 [[에리히 레더]] [[제독]]으로 바뀌었는데, 레더 역시 당시에 흔하디 흔했던 [[거함거포주의]] 신봉자였고 당시로는 독일 해군 내에서는 해상전의 최고 권위자였다. 이것까지는 아무런 문제점이 없는 것이 당시 [[항공모함]]이 무지막지하게 중요한 전력으로 급부상할 거라고 내다본 사람은 일본의 [[야마모토 이소로쿠]]와 미국의 [[체스터 니미츠]] 정도였고, 1960년대까지도 대구경 함포의 군함은 위협적인 존재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임자들과는 달리 레더 제독은 ''''영국 해군은 식민지 유지를 위해 3대양에 순양함들을 한가득 배치해놓은 상태고 본국함대인 홈 플릿에는 속력이 느린 전함들 뿐이니 우리 독일 해군은 [[중순양함]]과 [[순양전함]], [[고속전함]]으로 이루어진 고속타격대를 편성해 선발대의 영국 해군 주력함을 한 두 척 잡고 주력부대를 고속으로 따돌린 뒤 [[통상파괴전]]을 실시해야 한다'''' 라는 의중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레더의 의견을 들어본 [[아돌프 히틀러]]는 이 견해를 적극 채용하여 폴란드 해군과 프랑스 해군 뿐만 아니라 영국 해군에도 대응할 수 있는 수상함대 건설을 지시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 결정된 초창기 비스마르크급의 ROC(운용요구조건)는 프랑스 해군의 [[리슐리외급 전함]]이 등장하는 한편, 가상적군을 영국 해군까지 포함시키면서 ROC를 대폭 수정했다. 리슐리외급의 31kn에 맞춰 동등 혹은 이상의 속력이 필요했고, 영국 해군과 프랑스 해군을 상대할 수 있는 15인치급 포를 탑재하는 등 요구능력과 제약사항이 한층 더 늘어났다.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전 후, 독일 해군은 이 모든 것을 조속한 시일 내에 3만 5천톤급 선체로 건조할 기술력은 없었다. 결국은 [[배수량]]을 대폭 늘린다는 무식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을 채택했고 대외에는 3만 5천톤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4만톤급의 거함을 만들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비스마르크급은 [[아이오와급 전함]]과 [[야마토급 전함]]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의 전함이라는 비공식 타이틀을 얻었다. 비슷한 시간, 당시 영국과 미국은 군축조약 내에서 최대한 성능을 뽑아내기 위해 갖가지 전함을 개발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편 [[일본 제국 해군]]은 신형 전함을 건조할 수 없던데다가 일본이 [[나가토급 전함]] 2번함인 [[무츠(전함)|무츠]]를 살리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영국, 미국, 일본간의 조율이 이루어져서 일본은 무츠를 살렸고 영국과 미국은 16인치 주포를 장착한 전함 2척을 추가로 건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영국은 넬슨급 전함 2척을 새로 건조하였고 미국은 콜로라도급 2척을 추가로 건조할 수 있었던 사태까지 발생하여 기존에 보유한 전함들인 [[공고급 순양전함]], [[후소급 전함]], [[이세급 전함]], [[나가토급 전함]]들을 개장하고 있었고 결국 조약을 탈퇴해서 만든게 [[야마토급 전함]]이다. 당시 각 열강의 해군은 과도한 건함경쟁을 억제하기 위해 군함의 배수량과 무장에 제한을 두기 위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체결했고 이 조약 내에서 최대한의 성능을 뽑아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 서술했듯이 독일은 영국과 미국처럼 이 조약 내에서 성능을 뽑아낼 정도의 기술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제한된 시간 내에 보수적인 설계로 원하는 성능을 뽑아내기 위해 [[배수량]]을 잡아늘려버렸다. 사실 크기가 커지면 요구되는 예산이 엄청나지는데, 히틀러의 입장에서는 의회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의원이 나치당원들로 채워져 있었고 [[수권법]]에 의해 예산에 관한 권한을 포함한 모든 권한이 내각에 양도된 상태였기에 사실상 있으나마나 한 구색 맞추기용 허수아비나 다름 없었기에 별 문제가 없었다. 덕분에 예산 문제는 미국과 영국에 비해 해결하기 쉬웠다. 이렇게 해서 불법적으로나마 넉넉한 배수량을 보유할 수 있게 되자 검증된 구식기술로도 성능 향상을 달성할 수준의 용적이 주어졌고 독일 기술진은 터틀백 형식의 선체방어구조와 구형 전함 [[바이에른급 전함]]의 3 샤프트식 설계를, 공격력 향상을 위해 비교적 경량의 고속탄을 선택했다. 알고보면 결국 2차대전형 전함이 아닌 1차대전형 전함인 것이다. 이에 비해 비스마르크가 상대한 [[후드(순양전함)|HMS 후드]] 역시 장갑만 강화된 제1차 세계대전형 순양전함이었다. 전간기에는 전쟁혐오와 군축 분위기가 강해서, 엄청난 국력이 필요한 신형 전함 개발은 물론 기존 전함들의 개량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국 해군도 후드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필 대공황의 여파로 돈이 없어서 개량 시기를 놓쳤다는 걸 생각하면 신규전함을 구형설계로 만드는 것의 무리함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인 배의 디자인은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을 답습하고 있으나 배수량과 용적, 덩치가 커지고 11인치 3연장 주포 대신 빠른 장전속도와 포구초속을 가진 14.96인치 2연장 [[주포]]를 탑재했다. 또한 5.9인치 [[부포]] 및 4.1인치 [[대공포]]의 숫자도 증가되어 [[제1차 세계 대전]] 후 20년 만에 만들어진 독일 해군 전함치고는 그럭저럭 쓸만한 전함이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